"고통스러운 그 순간, 바로 거기서 진짜 배움이 일어납니다" - Hannah Fry 교수


지난 1월, 런던 ExCeL 전시장. 세계 최대 교육기술 박람회 BETT 2026 에 37,000명이 모였습니다. 700개 부스, 130개국 교육자들. 저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.

3일간 끝없이 걸으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.

"새로운 에듀테크를 하나 더 도입해야 해"가 아니라, "지금 쓰는 것 중 세 개를 정리해야 해"였습니다.


패스트푸드처럼 빠르지만 영양가 없는 AI

오프닝 무대에 수학자 Hannah Fry 교수 가 섰습니다. 그녀가 던진 단어가 귀에 꽂혔습니다.

"정크푸드 AI"

맥도날드 햄버거처럼 빠르고 편하죠. 버튼 하나면 답이 나옵니다. 그런데 영양가가 없습니다. 학생이 "왜?"를 묻기도 전에 답이 화면에 뜹니다.

Fry 교수가 말했습니다:

"머리 싸매고 끙끙대는 그 순간, 바로 거기서 진짜 배움이 일어납니다."

우리는 학생들에게 "쉽게"를 주려고 합니다. 그런데 그 "어려움"을 빼앗는 순간, 배움도 함께 사라집니다.

영국 교육부 장관 Bridget Phillipson 도 못 박았습니다:

"AI가 선생님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? 절대 아닙니다. 하지만 선생님이 잡일에서 벗어나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."

기술의 역할이 뭔지 명확해졌습니다. 대체가 아니라 해방 입니다.


냉장고 속 유통기한 지난 소스병처럼 쌓이는 에듀테크

BETT 2026에서 가장 뜨거웠던 주제가 있습니다.

영국 Education Policy Institute(EPI) 가 이름 붙인 현상: "에듀테크 피로"

무슨 뜻일까요?

냉장고 문을 열어보세요. 반만 쓴 소스병이 열 개. "이거 언제 샀지?" 싶은 잼이 다섯 개. 유통기한 지난 드레싱이 세 개.

학교 컴퓨터도 똑같습니다.

  • 작년에 연수받고 가입한 에듀테크 (한 번 써보고 잊어버림)

  • 무료 체험판으로 시작한 플랫폼 (체험 끝나고 방치)

  • 동료 선생님이 추천해서 도입한 도구 (비밀번호가 뭐였더라)

결과는?

현상 구체적 상황
시스템 파편화 A플랫폼 출석부, B플랫폼 과제, C플랫폼 학부모 연락. 데이터가 따로 논다
끝없는 학습 "이번엔 D플랫폼 연수입니다" → 배우다 지침
진짜 활용 제로 10개 도입했는데 제대로 쓰는 건 2개

요리 좋아하는 직원에게 구내식당 메뉴 개편을 맡기는 격

EPI 보고서가 꼬집은 문제가 있습니다.

학교에서 누가 새 기술 도입을 결정할까요? 디지털 담당 선생님 입니다. 정보부장님, 컴퓨터 잘 아시는 수학 선생님.

문제는요. 이분들이 열정은 넘치지만:

  • 예산 권한 없음

  • 전략적 지원 없음

  • 법적 검토할 시간 없음

마치 요리를 좋아하는 직원에게 구내식당 전체 메뉴 개편을 맡기는 것 과 같습니다. 열정만으로는 안 됩니다.


미국 학교는 평균 2,591개의 에듀테크를 쓴다

숫자로 보면 더 심각합니다.

조사 결과 수치
"기술 때문에 지친다"고 답한 교사 3명 중 2명
"동료들이 기술 피로로 힘들어한다" 79%
"채점 업무 때문에 퇴직 고민했다" (영국) 52%
미국 학교 평균 사용 에듀테크 개수 2,591개

2,591개. 선생님 한 분이 매일 사용하는 에듀테크가 몇 개나 될까요?


"우리도 AI 있어요!"에서 "그래서 뭘 해결하는데요?"로

BETT을 2년째 다녀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.

"2024년엔 '우리도 AI 있어요!'였어요. 2026년엔 '그래서 그 AI가 뭘 해결하는데요?'로 바뀌었어요."

AI 허니문 시기가 끝났습니다.

처음 AI가 나왔을 때 모두가 흥분했습니다. "와, 이게 된다고?" 지금은 다릅니다. "근데 이거 우리 학교에 필요해?"

전시장을 걸으며 느꼈습니다:

  • 2024년 부스 : 화려한 데모, "AI가 다 해줍니다!"

  • 2026년 부스 : 구체적 사례, "수학 풀이 과정을 이렇게 추적합니다"

뭐든 다 하는 AI 에서 딱 한 가지를 제대로 하는 AI 로 관심이 옮겨갔습니다.


덴버 학군은 1,000개를 346개로 줄이고 13억을 절감했다

미국 콜로라도주 덴버. 학생 9만 명이 다니는 큰 학군입니다.

이 학군이 2년 전 조사를 했습니다. 학교들이 쓰는 에듀테크가 몇 개인지.

1,000개가 넘었습니다.

비슷한 기능의 플랫폼이 여러 개. 아무도 안 쓰는 도구가 수백 개. 매년 갱신되는 구독료만 수십억.

덴버가 한 일:

  1. 전수조사 : 모든 에듀테크 목록 작성

  2. 심판 위원회 구성 : IT팀 + 교육과정팀 + 법무팀 + 현장 교사

  3. 하나씩 심사 : "이거 진짜 필요해?" → 필요 없으면 삭제

  4. 2년마다 재검토 : 살아남은 것도 계속 점검

결과:

항목 전 후
에듀테크 개수 1,000개+ 346개
연간 절감액 - 약 13억 원
교사 만족도 낮음 상승

70%를 줄였습니다. 그리고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. 오히려 "왜 진작 안 했지?"라는 반응이었습니다.


6개 플랫폼에 6번 로그인하면 1년에 90시간이 사라진다

BETT 2026에서 가장 많이 들은 문장:

"더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문제입니다."

Tom Rogerson 교장(영국 Cottesmore School)의 말입니다:

"기술은 아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합니다. 쪼그라들게 하면 안 됩니다."

구체적으로 상상해보세요.

A 선생님의 하루:

  1. 오전 8시: 출석 체크 (A플랫폼 로그인)

  2. 1교시: 수업 자료 공유 (B플랫폼 로그인)

  3. 2교시: 퀴즈 진행 (C플랫폼 로그인)

  4. 점심: 학부모 메시지 확인 (D플랫폼 로그인)

  5. 오후: 과제 채점 (E플랫폼 로그인)

  6. 방과후: 성적 입력 (F플랫폼 로그인)

6개의 다른 에듀테크. 6개의 다른 비밀번호. 6개의 다른 인터페이스.

로그인하는 데 쓰는 시간만 하루 30분. 1년이면 90시간 입니다.


넓고 얕게 말고, 좁고 깊게

BETT 2026 전문가들이 제시한 방향입니다.

"뭐든 다 하는 AI" 대신 "한 가지 전문가 AI"

  • ❌ "이 플랫폼으로 출석도 되고, 과제도 되고, 소통도 됩니다!"

  • ✅ "이 플랫폼은 수학 풀이 과정만 추적합니다. 대신 세계 최고입니다."

예시:

  • Magma Math : 수학 문제 풀이 과정을 영상처럼 재생. 학생이 어디서 막혔는지 교사가 정확히 봄

  • Snorkl : 학생이 말로 설명하면 AI가 즉시 피드백. "여기 논리가 비약됐어" 같은 구체적 코멘트

로그인 한 번으로 전부 접근하는 SSO

  • SSO = Single Sign-On

  • 학교 계정 하나로 모든 플랫폼에 자동 로그인

  • "비밀번호가 뭐였지?" 사라짐

도입 전에 "교사 시간이 실제로 줄어드나요?" 묻기

새 에듀테크를 도입하기 전, 이 질문을 던지세요:

질문 확인 방법
배우는 데 얼마나 걸려요? 30분 연수 vs 3시간 연수
매일 쓰면 얼마나 절약돼요? 하루 5분? 10분?
우리 LMS랑 연동돼요? 따로 로그인 필요한지
3번 클릭으로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어요? 직접 테스트

배우는 시간 > 절약되는 시간 이면, 도입하지 마세요.

관리자가 아니라 현장 교사가 선택에 참여

  •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"이거 쓰세요" ❌

  • 실제로 매일 쓸 선생님들이 테스트하고 투표 ✅


3개월 이상 안 쓴 에듀테크는 삭제 후보다

오늘부터 쓸 수 있는 체크리스트입니다.

플랫폼 이름 마지막 사용일 대체 가능? 판정
_____ _____ 예/아니오 유지/삭제
_____ _____ 예/아니오 유지/삭제

정리 기준:

  • 3개월 이상 안 씀 → 삭제 후보

  • 비슷한 기능의 다른 플랫폼이 있음 → 하나만 남기기

  • 무료 체험 끝남 → 유료 전환 안 할 거면 삭제


에듀테크 10개 대충 쓰지 말고 3개를 깊이 쓰세요

BETT 2026을 한 문장으로:

"Fewer Tools, Better Classrooms"
적은 도구로, 더 나은 교실

냉장고 정리하듯 에듀테크도 정리하세요. 안 쓰는 건 버리고, 비슷한 건 하나만 남기고, 남은 건 제대로 쓰기.

Hannah Fry 교수의 말이 계속 맴돕니다.

"진짜 배움은 편한 곳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. 머리 싸매고 끙끙대는 그 순간에 일어납니다."

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. 에듀테크 10개 대충 쓰느라 끙끙대지 마시고, 3개를 깊이 써보세요.

가르치는 시간을 되찾으세요.



#BETT2026 #에듀테크 #교사피로 #FewerToolsBetterClassrooms #오늘배움


참고 자료:

  • Education Policy Institute (2025). "Edtech decision-making and inclusive practice"

  • EdWeek (2025). "How This District Cut Hundreds of Ed-Tech Tools and Saved $1M"

  • Learnosity (2025). UK Teachers Struggling with Marking Workload Study

  • EdWeek Research Center (2021). Technology in Schools Survey

  • SETDA (2025). State EdTech Trends Report

  • BETT 2026 공식 키노트 및 세션 (2026.01.21-23, London ExCeL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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